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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 27대 왕의 전체 순서를 먼저 외운다
태정태세문단세 암기구호를 시대 흐름으로 나누기
조선시대 왕 순서는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영조,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으로 이어진다. 앞글자를 따서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으로 끊어 외우는 방법이 널리 쓰인다. 조선은 1392년 태조의 건국부터 1910년까지 이어졌고 왕위에 오른 군주는 모두 27명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정으로 폐위되어 묘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왕을 뜻하는 ‘종’이나 ‘조’가 아니라 ‘군’으로 부른다.
구호는 순서를 빠르게 복원하는 도구일 뿐, 문제의 정답을 보장하지 않는다. 왕마다 대표 사건을 한 개씩 붙이고 이후 두 번째 회독에서 제도와 문화사를 추가해야 한다. 처음 일곱 왕은 건국과 왕권·통치체제 정비, 예종부터 선조까지는 제도 완성과 사림 성장·사화·붕당·왜란, 광해군부터 숙종까지는 전후 복구와 호란·붕당정치, 경종부터 정조까지는 환국 이후 정국과 탕평정치, 순조부터 순종까지는 세도정치·민란·개항·대한제국과 국권피탈의 구간으로 나눈다. 왕 순서 문제에서는 앞뒤 왕만 묻기도 하고, 특정 사건이 어느 왕대인지 찾아 다음 왕의 업적을 고르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왕-대표 사건-다음 왕’의 세 칸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세종-훈민정음-문종, 선조-임진왜란-광해군처럼 연결하면 직접적인 업적 문제가 아니어도 계보를 이용해 답을 찾을 수 있다.
2. 태조부터 세종은 건국과 통치체제 정비 구간이다
태조·정종·태종·세종의 왕권 강화 과정 구분하기
1대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정도전 등 개국 공신 세력이 새 왕조의 통치 이념과 제도를 설계했으며, 불교 중심의 고려 질서에서 성리학 중심 국가로 전환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왕자의 난 이후 왕위에 오른 2대 정종은 재위 기간이 짧았고, 동생 이방원에게 왕위를 넘겼다. 시험에서는 정종의 세부 업적보다 태조와 태종 사이에 위치한다는 계승 순서가 더 자주 활용된다. 태조 다음을 바로 태종으로 답하지 않도록 ‘태조-정종-태종’을 한 묶음으로 외운다.
3대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사병을 혁파하고 6조 직계제를 실시했으며 호패법을 시행했다. 공신과 외척을 견제하고 왕이 행정기구를 직접 장악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했다. 4대 세종은 집현전을 중심으로 학문과 정책 연구를 장려하고 의정부 서사제를 운영하여 재상과 관료의 역할을 활용했다. 훈민정음을 창제·반포했으며 측우기, 자격루, 앙부일구 같은 과학기술과 농사직설 편찬도 세종대의 대표 내용이다. 북방에서는 4군 6진을 개척하여 영토를 안정시켰고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쓰시마섬 정벌과 계해약조를 연결해 정리한다. 태종과 세종은 모두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했지만 행정 방식과 대표 정책이 다르다. 사병 혁파·호패법·6조 직계제는 태종, 집현전·훈민정음·4군 6진은 세종으로 구분한다. 건국 초 문제를 풀 때는 태조의 새 왕조 수립, 태종의 권력 집중, 세종의 제도·문화 발전이라는 세 단계로 흐름을 잡으면 된다.
3. 문종부터 성종은 왕위 갈등과 법전 완성 구간이다
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연결 사건 익히기
5대 문종은 세종의 뒤를 이었으나 재위 기간이 짧았고, 어린 아들 단종이 6대 왕으로 즉위했다.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장악한 뒤 왕위를 차지하여 7대 세조가 되었다. 단종 복위를 꾀한 사육신 사건과 생육신의 절의는 이 왕위 교체와 연결해 학습한다. 세조는 왕권 중심의 6조 직계제를 다시 실시하고 집현전을 폐지했으며 직전법을 시행했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편찬도 세조 때 시작되었지만 완성·반포는 성종대라는 점이 자주 비교된다. ‘경국대전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왕’과 ‘완성한 왕’을 구분해야 한다.
8대 예종도 재위가 짧았고 뒤를 이어 9대 성종이 즉위했다. 성종은 경국대전을 완성해 조선의 통치체제를 법제화하고 홍문관을 설치했으며 경연을 활성화했다. 김종직을 비롯한 사림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기존 훈구 세력과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문화적으로는 동국통감과 동국여지승람 같은 편찬사업도 성종대와 연결된다. 이 구간은 ‘세종의 안정된 계승-문종의 이른 죽음-어린 단종-세조의 왕위 장악-짧은 예종-성종의 제도 완성’이라는 이야기로 외우면 순서가 잘 남는다. 자료에 수양대군, 계유정난, 사육신이 나오면 단종과 세조 사이를 찾고, 직전법과 집현전 폐지가 나오면 세조, 경국대전 완성과 홍문관이 나오면 성종을 선택한다. 왕 이름을 외운 뒤에는 6조 직계제를 태종과 세조가, 의정부 서사제를 세종이 활용했다는 비교까지 더하면 통치기구 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다.
4. 연산군부터 선조는 사화와 붕당 형성 구간이다
연산군·중종·인종·명종·선조의 정치 변화 정리하기
10대 연산군 때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일어나 사림이 큰 피해를 입었다. 폭정과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자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고, 11대 중종이 즉위했다. 중종은 조광조를 등용해 현량과 실시, 위훈 삭제와 향약 보급 같은 개혁을 추진했으나 훈구 세력의 반발 속에서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연산군 때 두 사화와 중종 때 기묘사화를 구분하고, 중종반정이 연산군에서 중종으로 왕이 바뀌는 계기였다는 점을 연결한다. 12대 인종은 재위 기간이 매우 짧아 순서 문제에서 빠뜨리기 쉽기 때문에 ‘중종-인종-명종’을 한 묶음으로 반복한다.
13대 명종 때에는 외척 세력의 대립 속에 을사사화가 일어났고, 임꺽정의 활동은 당시 사회의 혼란과 연결된다. 14대 선조 때 사림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동인과 서인으로 붕당이 형성되었다. 선조 재위 중 일본이 침략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의병과 수군의 활동, 명의 지원, 훈련도감 설치와 전후 사회 변화가 이어졌다. 선조는 왜란 이전의 붕당 형성과 왜란의 전개를 모두 포함하므로 어느 시점의 사료인지 살펴야 한다. 이 구간의 사화 순서는 연산군의 무오·갑자, 중종의 기묘, 명종의 을사로 정리하며 인종을 사이에 넣어 왕 순서를 유지한다. 사화 이후 사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향촌 기반을 통해 다시 성장하여 선조 때 중앙정치를 주도했다는 흐름이 중요하다. 자료에 조광조와 현량과가 나오면 중종, 외척 윤씨와 을사사화는 명종, 동인·서인의 분화나 임진왜란은 선조로 판단한다.
5. 광해군부터 숙종은 전쟁과 붕당정치 구간이다
광해군·인조·효종·현종·숙종의 대외관계와 정국 비교하기
15대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전후 복구를 추진하고 경기도에서 대동법을 실시했으며 동의보감을 간행했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현실적인 외교를 추진했으나 서인 세력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16대 인조는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웠고 후금과 청의 침입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삼전도의 항복과 소현세자·봉림대군의 인질 생활은 병자호란의 결과로 연결한다. 광해군의 외교와 인조의 대외정책은 시험에서 반대 방향으로 자주 비교되므로 중립외교와 친명배금을 구분해야 한다.
봉림대군이 왕위에 올라 17대 효종이 되었고 청에 대한 북벌을 추진했다. 실제 대규모 북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군사력 강화와 송시열 등 북벌론자의 활동이 효종대의 핵심이다. 18대 현종 때에는 왕실의 상복 기간을 둘러싼 예송이 발생해 서인과 남인이 대립했다. 19대 숙종은 환국을 통해 집권 붕당을 여러 차례 교체하면서 왕권을 강화했고, 이 시기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백두산정계비 건립과 안용복의 독도 관련 활동도 숙종대와 연결된다. 이 다섯 왕은 ‘광해군의 전후 복구와 외교-인조의 두 호란-효종의 북벌-현종의 예송-숙종의 환국’으로 암기한다. 예송과 환국은 모두 붕당정치의 사건이지만 예송은 상복을 둘러싼 논쟁, 환국은 국왕이 주도해 집권 세력이 급격히 교체된 정치 변화다. 사건의 성격을 구분하면 현종과 숙종을 바꾸어 놓은 선택지를 걸러낼 수 있다. 대동법은 광해군 때 시작되고 숙종 때 전국으로 확대된 흐름도 함께 기억한다.
6. 경종부터 정조는 탕평정치와 개혁 구간이다
경종·영조·정조의 정국 운영과 대표 정책 구분하기
20대 경종은 숙종의 뒤를 이었으며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격화된 가운데 신임사화가 일어났다. 재위 기간이 짧았고 왕위는 이복동생인 21대 영조에게 이어졌다. 영조는 붕당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탕평책을 시행하고 탕평비를 세웠다. 군포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균역법을 실시했으며 법전인 속대전을 편찬했다. 청계천 준설과 신문고 부활도 영조의 정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영조대 정치와 왕위 계승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이며, 사도세자의 아들이 뒤를 이어 정조가 되었다.
22대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고 초계문신제를 운영해 인재를 육성했으며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했다. 수원 화성을 건설하고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신해통공을 실시해 상업 활동의 폭을 넓혔다. 정조도 탕평을 추진했지만 영조와 같은 정책을 그대로 반복한 것은 아니며, 강한 왕권과 개혁정치를 뒷받침할 새로운 정치세력을 육성하려 했다. 경종·영조·정조는 ‘신임사화-탕평과 균역법-규장각과 화성’으로 연결한다. 영조와 정조는 함께 탕평군주로 묶이기 때문에 세부 업적을 교차해서 내는 문제가 많다. 균역법과 속대전은 영조, 규장각·장용영·수원 화성·신해통공은 정조로 구분한다. 문화사에서는 영조·정조대에 실학과 서민문화가 발달한 사회적 배경을 함께 살피고, 왕대별 편찬서와 건축물을 사진 자료로 연결해야 한다. 정조 다음에는 어린 순조가 즉위하면서 세도정치 구간으로 전환된다.
7. 순조부터 순종은 세도정치와 근대 전환 구간이다
순조·헌종·철종·고종·순종을 개항과 국권피탈에 연결하기
23대 순조부터는 왕권이 약화되고 외척 가문이 권력을 장악하는 세도정치가 본격화되었다. 순조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천주교 박해도 전개되었다. 24대 헌종 때에도 세도정치가 이어졌으며 기해박해가 발생했다. 25대 철종 때에는 삼정의 문란이 심해지고 임술농민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농민의 저항에 대응해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지만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순조-홍경래의 난, 헌종-기해박해, 철종-임술농민봉기’로 대표 사건을 붙이면 짧고 비슷하게 느껴지는 세 왕을 구분하기 쉽다.
26대 고종은 어린 나이에 즉위해 초기에는 흥선대원군이 정치를 주도했다. 대원군은 서원 철폐, 호포제, 사창제와 경복궁 중건 등을 추진했고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폈다. 이후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하고 개화정책,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과 을미사변 등 급격한 변화가 이어졌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했으며 광무개혁을 추진했다. 1907년 고종이 물러난 뒤 27대 순종이 즉위했고, 1910년 국권을 빼앗기면서 왕조가 끝났다. 이 시기는 왕의 업적만으로 모든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대원군 집권기, 개항과 개화정책, 대한제국, 국권피탈의 단계로 나누어야 한다. 전체 순서를 최종 복습할 때는 27명을 한 번에 말한 뒤 각 왕 옆에 대표 사건 하나를 적고, 반정으로 바뀐 연산군-중종과 광해군-인조, 짧은 재위의 정종·문종·예종·인종·경종을 별도로 표시한다. 이렇게 하면 순서와 빈출 사건을 동시에 복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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